약국은 뷰티 매장이 되고, 뷰티 매장은 약국이 됐다
파머시뷰티란? 약국과 뷰티 매장의 경계가 무너진 이유. 1999년엔 소송, 2026년엔 동맹. 올리브영·무신사·약국 체인이 동시에 움직이는 파머시뷰티 흐름을 정리하고, 뷰티 브랜드가 채널·근거·콘텐츠·표현에서 준비할 4가지를 짚었다.
Oct 12, 2026
- 1999년 올리브영 1호점 안의 약국은 약사회의 반발과 약사법 위반 소송까지 불렀지만, 2026년 9월 무신사 뷰티는 매장 지하 1층 전체를 약국으로 채웠고 반발은 없었다.
- 뷰티 매장은 제약사·약국의 신뢰를 빌려오고(올리브영 어드밴스드 더마 650개 매장), 약국은 외국인 관광객의 K-뷰티 쇼핑 코스가 되며 매장 안에 뷰티존을 만들고 있다. 경계가 양쪽에서 동시에 무너지는 중이다.
- 이 시장에서 브랜드가 먼저 정해야 할 건 '어디에 입점하나'가 아니라 '어떤 신뢰를 근거로 팔리나'이고, 그 근거가 되는 효능 표현의 선은 오히려 더 엄격해지고 있다.
9월 11일 서울 홍대에 문을 연 무신사 뷰티 첫 단독 매장.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화장품 매대 대신 약국이 나온다. 국내 최대 약국 체인 온누리약국이 약 53평 규모로 입점했고, 약사가 상주하며 피부 고민 상담을 한다.
흥미로운 건 이 조합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7년 전 같은 시도가 있었고, 그때는 소송으로 끝났다. 같은 아이디어가 이번엔 왜 '동맹'이 됐을까. 답은 매장 하나의 실험이 아니라 시장 구조의 변화에 있다. 뷰티 매장은 약국을 닮아가고, 약국은 뷰티 매장을 닮아가며, 둘 사이의 경계가 양쪽에서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 업계는 이 흐름을 '파머시뷰티(Pharmacy Beauty)'라고 부른다.
1999년엔 소송, 2026년엔 동맹
국내 뷰티 플랫폼에 '약국형 화장품 매장'이 처음 등장한 건 1999년 말, CJ올리브영 1호점이었다. 약 330㎡ 매장 중 약 82㎡를 약국으로 꾸리고 '국내 최초 드러그스토어'를 내걸었다. 결과는 대한약사회의 강한 반발이었다. 대기업의 약국 사업 침해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운영사였던 CJ제일제당은 약사법 위반으로 소송까지 당했다. 올리브영은 결국 2008년 무렵 지금의 H&B(헬스앤뷰티) 모델로 방향을 틀었다. 2004년 코오롱웰케어가 시작한 약국 체인 'W스토어'도 수익을 내지 못하고 정리됐다.
27년 뒤, 무신사 뷰티와 온누리약국의 협업에는 반발이 없었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양쪽 모두 든든한 우군을 얻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같은 조합이 정반대의 반응을 얻은 데는 세 가지 변화가 있다.
첫째, 더마 카테고리 자체가 대중화됐다. 역설적으로 그 토대를 만든 건 약국을 접고 H&B로 전환한 올리브영이었다. 대기업 로드숍과 경쟁할 중소 브랜드를 찾던 올리브영 매대에 2011년 닥터지를 시작으로 CNP, 닥터자르트 같은 더마 브랜드가 올라갔고, '병원·약국에서만 사던 고기능 화장품'이 일상 소비재가 됐다.
둘째, K-뷰티의 글로벌 확장과 외국인 관광객 수요다. 올리브영에 따르면 오프라인 매장의 외국인 대상 더마 화장품 매출은 2023년부터 2025년 사이 약 90% 늘었다.
셋째, 이해관계가 경쟁에서 보완으로 바뀌었다. 뷰티 플랫폼은 고기능 카테고리를 설득할 '전문성'이 필요하고, 약국은 처방 조제 바깥의 새 매출원과 젊은 고객이 필요하다. 서로가 가진 것이 상대에게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뷰티 매장은 왜 약국을 들이고 있나
가장 빠르게 움직인 건 올리브영이다. 국내 제약사들과 함께 개발한 고기능 스킨케어 카테고리 '어드밴스드 더마'를 3월 말 론칭했고, 4개월 만에 전용 매대를 전체 매장의 절반가량인 650개로 늘렸다. 6월 매출은 론칭 직후인 4월보다 260% 이상 늘었고, 매출의 약 70%가 외국인이었다. 성수 '뷰티 맨션'에서 운영하는 어드밴스드 더마 뷰티 컨설팅은 이용객의 80% 이상이 외국인이다. 올리브영은 참여 제약사와 상품군을 계속 넓히겠다고 밝혔다.
무신사의 방식은 한 걸음 더 나갔다. 매대를 만드는 대신 약국을 통째로 들였다. 홍대점 지하 1층 '뷰티 온누리약국'은 전국 2,200여 개 가맹망을 가진 온누리약국의 첫 뷰티 특화 가맹점으로, 약 2,000개 상품 중 90% 가량이 뷰티 관련 제품이다. 무신사의 고객 데이터·트렌드 분석으로 상품을 함께 고르고, 약사가 상주하며, 두피·모발과 여드름·트러블 전용 큐레이션 공간도 따로 둔다. 일반 화장품부터 약국 전용 제품, 관련 의약품까지 한 공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외국인과 2030 유동 인구가 많은 홍대를 첫 매장으로 고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백화점도 합류했다. 현대백화점은 판교점 지하 1층에 더마 콘셉트 스토어 '코어드(Coord)' 1호점을 여는 계획을 밝혔다.
세 곳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뷰티 매장이 지금 들여오는 건 상품이 아니라 '제약사와 약사의 신뢰'다. 자체 MD의 안목만으로는 고기능 카테고리를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그 신뢰를 빌려오는 것이다.
약국은 어떻게 뷰티 매장이 되었나
반대편에서는 약국이 뷰티 매장처럼 바뀌고 있다. 출발점은 외국인 관광객이다. 방한 외국인 결제 플랫폼 와우패스 운영사 오렌지스퀘어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외국인 관광객의 약국 결제액은 2년 전 같은 기간보다 약 10배, 결제 건수는 약 5배 늘었다. 결제의 약 80%가 명동·홍대·강남·성수에 몰렸다.
더 눈여겨볼 건 '무엇을 사러 왔는가'다. 와우패스 결제 고객 리뷰 중 방문 목적이 확인되는 후기를 분석한 결과, 미용·건강 제품 구매가 72%, 치료 목적 의약품 구매는 28%였다. 가장 많이 언급된 품목은 재생크림 등 피부관리 크림이었고, 감기약 같은 상비약은 상위 5개 품목에 들지 못했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 기준으로도 올해 1분기 외국인 약국 소비는 전년보다 196.8% 늘었다.
공급도 따라 움직인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9개월 동안 서울 중구에만 외국인 타깃 약국 28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약국 플랫폼 바로팜은 약국 안에 K-뷰티·더마 제품을 모은 숍인숍 '파마시뷰티존'을 명동·홍대·성수 등 10개점에서 연내 1,000곳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제약사들도 '약국 전용 라인'을 따로 키운다. 파마리서치는 리쥬란과 별도로 약국 전용 브랜드 '리쥬비'를 두고, 화장품·이너뷰티·의료기기·건강기능식품을 잇는 약국 홈케어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
다만 약국 업계 안에서도 신중함이 있다. 25년여 전 비쉬·유리아쥬 같은 브랜드가 약국 화장품으로 전성기를 누리다 의약분업 이후 거품이 꺼진 경험이 있어, 이번 붐을 일시적 특수가 아닌 구조로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해외에서도 같은 흐름일까
관광 특수로만 보기엔 글로벌 숫자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로레알의 2026년 상반기 실적에서 더마톨로지컬 뷰티 부문은 매출 42억 유로, 조정 동일기준 성장률 +10.6%를 기록했다. 그룹 전체(+6.5%)를 크게 웃도는 수치이고, 라로슈포제·세라비·스킨수티컬즈가 모두 두 자릿수 성장했다.
파머시뷰티의 원조인 프랑스에서는 약국 화장품 시장이 약 30억 유로 규모로 6% 성장 중이며, 약국 평균 마진의 6%, 많게는 25%를 화장품이 차지한다(CEW France, 2026년 3월). 시장조사기관 Circana 데이터에서도 약국은 금액 기준 10% 성장하며 프랑스에서 가장 역동적인 뷰티 채널로 꼽혔다.
미국에서는 뷰티 전문점이 '클리니컬' 존을 키운다. 세포라는 8월 영국 클리니컬 스킨케어 브랜드 Medik8을 미국 250개 매장에 들였고, BeautyMatter가 2026년 2분기 글로벌 유통 확장 91건을 분석한 결과 매스·그로서리·약국 채널이 프레스티지·전문 브랜드를 점점 더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국 수출 구조도 같은 방향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상반기 화장품 수출 70억 달러 중 기초화장품은 25.0% 늘었지만 색조는 4.2% 줄었다. 돈이 '꾸미는 화장품'에서 '관리하는 화장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차이가 하나 있다면 주도권이다. 프랑스는 약국 전용 브랜드가 약국 채널을 키워온 역사인 반면, 한국은 올리브영·무신사·바로팜 같은 리테일러와 플랫폼이 경계를 먼저 허물고 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누가 판을 짜고 있는가'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채널의 경계는 흐려져도 화장품과 의약품을 가르는 법적 경계는 그대로
오히려 단속은 강해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 의원이 식약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PDRN 성분을 표시·광고에 쓴 화장품 업체 적발 건수는 2023년 7건, 2024년 19건, 2025년 39건으로 늘었고 2026년에는 상반기에만 41건이었다. 최근 4년 누적 106건 중 76.4%가 '의약품 오인 우려 광고'였다. 식약처는 7월 대한화장품협회와 함께 온라인 광고 178건을 적발했는데, 이 중 80%(142건)가 '여드름 치료', '가려움증 완화' 같은 의약품 오인 표현이었다.
브랜드가 특히 주의할 지점은 '맥락'이다. 약국 진열, 약사 상담, 제약사 개발이라는 신뢰 맥락이 강해질수록 소비자는 의약품에 가까운 효과를 기대하기 쉽고, 규제 당국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한다. 국회에서는 개별 광고 문구 단속을 넘어 PDRN처럼 의약품을 연상시키는 성분명 자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왔다. 상세페이지뿐 아니라 매장 POP, 크리에이터 콘텐츠까지 모두 표시·광고의 범위다.
그래서 브랜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1. 채널 포지션부터 정한다. 지금 브랜드 앞에는 세 갈래 길이 있다. 약국 전용 라인(희소성·상담 기반), H&B·플랫폼의 더마 존(규모·외국인 접점), 혹은 둘 다. 둘 다 노린다면 라인을 분리하는 편이 낫다. 파마리서치가 리쥬란과 약국 전용 리쥬비를 나눈 것처럼, 같은 제품을 모든 채널에 깔면 '약국에서만'이라는 신뢰 프리미엄이 희석된다. 약국 현장 약사들도 브랜드 인지도를 활용하되 약국 채널만의 차별화된 가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 '근거 자산'을 만든다. 경계가 사라진 매대에서 브랜드를 구분하는 건 로고가 아니라 근거다. 오픈서베이 '뷰티 트렌드 리포트 2026'에서 한국 여성 소비자의 68%가 화장품을 살 때 임상 결과나 구체적 수치를 확인한다고 답했고, WGSN은 마케팅 수사보다 사실과 투명성을 따지는 소비자군(Impartialists)을 주요 페르소나로 꼽았다. 인체적용시험, 기능성 심사 결과처럼 약사나 매장 컨설턴트가 상담에서 바로 꺼낼 수 있는 '근거 한 장'을 준비해야 한다.
3. 발견 경로를 설계한다. 구매 결정은 약사 상담대나 매장 컨설팅에서 일어나지만, 발견은 여전히 SNS에서 시작된다. 명동 약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틱톡·샤오홍슈에서 본 후기를 들고 오고, 인바운드 여행 플랫폼에서는 '약국 투어'가 상품 카테고리가 됐다. 크리에이터 콘텐츠가 '좋은 제품'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면 안 되는 이유다. 어느 약국, 어느 매대에서 찾을 수 있는지까지, 국가별로 쓰는 플랫폼에 맞춰 검색과 동선을 이어줘야 매대 앞의 선택으로 연결된다.
결론
1999년과 2026년 사이에 바뀐 건 약국도, 뷰티 매장도 아니다. 소비자가 '어디서 사느냐'보다 '무엇을 믿고 사느냐'를 먼저 따지게 됐다는 점이다. 경계가 사라진 매대 위에서 브랜드를 고르게 만드는 건 결국 근거와 신뢰이고, 채널 전략·콘텐츠·표현 관리는 모두 그 신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로 모인다. 무신사 홍대점은 이제 막 문을 열었고, 바로팜의 1,000개 목표와 올리브영의 제약사 확대도 진행형이다. 판이 다 짜이기 전, 지금이 자리를 정할 시점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파머시뷰티(Pharmacy Beauty)란 무엇인가요?
A. 약국의 전문성(약사 상담, 제약사 기술)과 뷰티 소비가 결합된 유통·소비 흐름을 말한다. 약국이 화장품·이너뷰티를 적극 판매하는 것과, 올리브영·무신사처럼 뷰티 매장이 제약사·약국과 협업하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Q. '약국 전용 화장품'은 법적으로 일반 화장품과 다른가요?
A. 다르지 않다. '약국 전용'은 유통 전략일 뿐이고, 법적으로는 일반 화장품 또는 기능성화장품으로 분류되며 효능 표현 기준도 같다. 약국에서 판매된다고 의약품 수준의 효능을 표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Q. 올리브영 어드밴스드 더마에는 어떤 브랜드가 들어가나요?
A.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고기능 스킨케어 제품이 중심이다. 올리브영N 성수 팝업에는 동국제약, 동아제약, 리쥬덱스 등이 참여했고, 올리브영은 참여 제약사와 상품군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입점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다.
Q. 외국인 관광객은 약국에서 주로 무엇을 사나요?
A. 와우패스 리뷰 분석 기준으로 재생크림 등 피부관리 크림이 가장 많았고, 여드름·트러블 케어, 영양제·건강기능식품, 스킨케어 화장품, 인공눈물 순이었다. 상비약은 상위 5개 품목에 들지 않았다.
Q. 브랜드가 약국 채널에 들어갈 때 가장 주의할 점은?
A. 의약품 오인 표현이다. 최근 4년 PDRN 화장품 광고 적발의 76.4%가 의약품 오인 우려 광고였다. 상세페이지, 매장 POP, 크리에이터 콘텐츠 모두 표시·광고 범위에 들어가므로 효능 문구 가이드를 채널 전반에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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